기묘한 새벽산책
새벽에 일어났다.
속이 안 좋은 걸로 봐선 어제 먹은 저녁이 체했나보다.
물을 한잔 마시고 작은 방에 앉아 글을 쓴다.
조금 지나니 체한 게 더 심해진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선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옷을 챙겨 입고 산책을 나선다.
좀 걷고 나면 괜찮아지리라.
문을 나서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여기는 17층.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다.
5분쯤 지났을까. 아직 엘리베이터는 올라오는 중이다.
가만히 보니 층마다 잠시 서 있다가 올라온다.
새벽에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지 궁금하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
드디어 17층.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손에 우유 박스를 들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치고 짧게 인사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8층이 마지막이니 기다려주고 싶다.
우유를 우유 주머니에 넣고 돌아온 아이는 좀 놀란 듯 하더니 얼른 엘리베이터에 탔다.
18층도 얼른 끝내고 1층으로 내려와 우리는 각자 갈 길로 향했다.
아파트 후문으로 나가 공원 산책을 시작했다.
아직 어둑했지만 공원 가로등이 켜져 있어 괜찮았다.
이렇게 보니 공원 참 멋지다. 나무가 좀 더 자라면 꽤 운치 있겠다.
산책을 시작한지 2~3분쯤 지났을 때 어디선가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린다.
꽤엑~ 꽤~~엑~~ 하는 그 소리는 돼지 소리가 아니라 오리 소리였다.
공원 옆에는 호수보다는 작고 연못보다는 큰 늪이 하나 있다.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라서 곧 사라질 테지만
아직은 물도 꽤 있고 몇몇 물고기와 개구리도 산다.
평소에는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소리만 들리던 곳이
첨벙대는 소리와 돼지 멱따는 아니 오리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가 보았다.
오리가 한두 마리가 아니다.
우포늪 같은 데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오리들이 떼로 와서 늪을 점령했다.
인간들의 눈을 피해 새벽에 늪을 점령한 오리들.
어딘가로 이동하다 잠시 쉬기 위해 떼로 들렸나보다.
여기가 아마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개념일 것이다.
왠지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도 곧 물을 빼내고 땅을 매워서 아파트를 짓겠지?
내년에 이 오리들은 어디서 쉬어야 하나?
점점 날이 밝아온다. 오리들이 하나 둘씩 무리 지어 떠난다.
이번엔 돼지 멱따는 소리가 아니라 처음 들어보는 묘한 소리를 낸다.
돌고래가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신호 같다.
나도 그 신호에 응답하여 나머지 산책을 계속한다.
날이 밝아지니 공원 가로등이 꺼졌다.
불빛도 사라지고 오리들도 떠났다.
공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하다.
저 멀리 아파트 공사 소리와 버스의 엔진소리만 들려온다.
돌아온 엘리베이터엔 우유를 배달하는 아이도 없다.
오늘 아침 산책은 기묘했다.
무언가 한꺼번에 다가와 썰물처럼 빠져나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