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에세이들

쓰고 싶은 것을 쓴다는 것에 대해

여행자의 별 2017. 5. 30. 08:34



우리의 인생은 기대로 가득 차 있다.

그 기대가 나의 기대인지 누구의 기대인지 주인을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기대가 우리를 기르고 기대가 우리를 이끈다.


그렇게 울타리 안에서 살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마비되었다.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우리 주변의 기대가 낸 과제에 정신이 없다.


오늘까지 무엇을 해야 하고

내일까지 어떤 것을 해야 하지만

마음 속 내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닌 게 아닌 것 같지 않아’




미쳤나보다.

뭔 소린지도 모를 말을 눈치 보며 한다.

중요한 게 아니면 아니지 아닌 것 같지 않다는 게 아니라니.

내가 미친 걸 인정하고 용기를 낸다.

이제 좀 시작하자.


글 한번 써보겠다고 카페에 앉았다.

전망이 좋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워드 프로세서의 커서가 깜빡인다.

넌 무엇이든 쓸 준비가 되었다고 알리지만

난 아직 무엇을 써야할 지 모르겠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

나의 정체가 희미하고

나의 욕망을 모른다는 것.

이것 때문에 나는 길을 잃었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창문에 내가 비친다.

미친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뭔가 해보려 노력중인 듯하다.

그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한다고 호령하는

신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듯하다.

조금 기다려도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카페에 한 아이가 아빠와 함께 들어왔다.

아빠는 스마트 폰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는 카페 구석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를 만지작거린다.

아빠의 경고가 카페를 가로지르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트리를 만지작거리다 결국 구슬 하나를 떼어 가진다.

웃는 모습이 행복하다.

오 넌 신의 목소리를 들었나보구나.

그 아이에게 부탁하고 싶다.

나에게도 좀 와달라고 해주렴.


쓰고 싶은 것을 쓴다는 것.

천둥처럼 외치는 신의 목소리를 기다린다는 것.


그건 어쩌면

코앞으로 진격해온 남의 기대를 물리치고

내 앞에 놓인 키보드를 두드리며

의식을 거행해야 가능하리라.


오, 신이시여.

나에게도 구슬 하나만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