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6 존재의 네트워크 사람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나 혼자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 뿐이다. 어느 휴일 날 나는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열람실에 앉아요즘 내가 고민하는 부분들을 구체화시켜 나가던 중이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던 한 아주머니가 열람실 담당자에게컴퓨터가 되지 않는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그 목소리가 조금 커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하나둘씩 그쪽을 쳐다보았다.그렇게 몇 분이 흐른 뒤 참다못한 한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지금 뭐하는 거요?”“뭐하긴요. 도서관 컴퓨터가 안 돼서 이야기 중이잖아요.”“아니 그러니까 왜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하냐고요.”“그럼 이야기 안 하고 어떻게 합니까?”“안되면 다른 컴퓨터를 쓰든지 하면 되지 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냐고요.”“컴퓨터가 안 되는 게 비정.. 2017. 5. 30. 부모의 고달픔 부모. 부모는 무슨 죄를 지은 자의 이름인가?특별히 모난 짓도 하지 않았는데연습 한번 없이, 느닷없이 부모가 된다. 아이의 탄생은한없는 기쁨을 주지만무한한 책임감도 함께 손에 쥐어준다. 기쁨과 책임감은 어느덧기한 없는 수고스러움,알 수 없는 노여움,잘 해주지 못하는 슬픔으로 바뀌다가다시 보람과 회한으로 소용돌이 치며 묘하게 출렁인다. 아이를 키우며부모는 자신의 부모를 생각한다.그 고달픔을 이해하고 웃다 눈물 흘린다.부모를 증오했던 사람도부모를 사랑했던 사람도부모라는 그 고달픈 이름 아래 고개 숙인다. 하지만언젠가는 이해할지도 모르겠다.그 본능적인 사랑과필연적인 고달픔이내 존재를 증명하고살아가는 행복을 떠받친다는 걸. 문득 새벽에 도시락 싸는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그 고달픈 모습을 자세히묘사하는 건 죄.. 2017. 5. 30. 쓰고 싶은 것을 쓴다는 것에 대해 우리의 인생은 기대로 가득 차 있다.그 기대가 나의 기대인지 누구의 기대인지 주인을 알 수 없지만어쨌거나 기대가 우리를 기르고 기대가 우리를 이끈다. 그렇게 울타리 안에서 살다보니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마비되었다.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가?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과제임에도 불구하고우린 우리 주변의 기대가 낸 과제에 정신이 없다. 오늘까지 무엇을 해야 하고내일까지 어떤 것을 해야 하지만마음 속 내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닌 게 아닌 것 같지 않아’ 미쳤나보다.뭔 소린지도 모를 말을 눈치 보며 한다.중요한 게 아니면 아니지 아닌 것 같지 않다는 게 아니라니.내가 미친 걸 인정하고 용기를 낸다.이제 좀 시작하자. 글 한번 써보겠다고.. 2017. 5. 30. 기묘한 새벽산책 새벽에 일어났다. 속이 안 좋은 걸로 봐선 어제 먹은 저녁이 체했나보다.물을 한잔 마시고 작은 방에 앉아 글을 쓴다.조금 지나니 체한 게 더 심해진다.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선 해결이 안 될 것 같다.옷을 챙겨 입고 산책을 나선다.좀 걷고 나면 괜찮아지리라. 문을 나서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여기는 17층.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다.5분쯤 지났을까. 아직 엘리베이터는 올라오는 중이다.가만히 보니 층마다 잠시 서 있다가 올라온다.새벽에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지 궁금하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드디어 17층.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손에 우유 박스를 들고 있었다.순간 눈이 마주치고 짧게 인사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18층이 마지막이니 기다려주고 싶다.우유를 우유 주머니에 .. 2017. 5. 30. 힘 빼고 살기 오늘 아침, 면도를 했다. 하루 이틀 면도하는 건 아니지만 새삼스러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내가 면도를 할 때 너무 힘을 줘서 한다는 것. 깔끔하게 해야 된다는 생각에 힘을 주니 상처도 많이 나고 면도 자체가 힘든 일이 되었다. 오늘은 힘 좀 빼고 면도를 해봤는데 오히려 면도가 더 잘 된다.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하게 면도할 수 있었다. 힘도 덜 들었다. 물론 매일 면도 안 해도 되는 축복 받은 이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 일지도. 이번엔 세수 할 때 힘을 빼고 해 봤는데. 오호라. 세수가 이렇게 수월할 수가. 머리 감는 것도 힘을 빼고 하니 훨씬 덜 힘들었다. 이 닦는 것도 그렇다. 칫솔질을 할 때 힘을 절반 정도로 줄이니 이렇게 편할 수가. 이 닦기의 새로운 경지에 이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 2016. 10. 11.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리뷰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에세이다.표지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짧은 웹툰 같은 느낌이 든다.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는 가볍다. 가벼워서 읽기 쉽고 쉬워서 읽고 싶은 에세이다.내용은 담백하고 그 내용에 담긴 감수성은 섬세하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이 주재료가 된다.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라는 제목은 또 한번 나를 돌아보게 한다.전진하지 못해 죄책감을 안고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겐 참으로 공감가는 제목과 내용이다.아주 특별한 내용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아주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 가득하다.에세이를 읽어보면 때때로 허무할 때도 있다. 이렇게 끝? 마스다 미리는 솔직하다.뭔가 있는 척 하지도 않는다. 고민은 고민대로 남겨두고 느낀 건 느낀대로 이야기한다.과도하게 뭔가를 꾸미거나 지어내는 일을 하지 않으니 관.. 2016. 8. 21. 이전 1 다음